전시회팜플렛01          구멍가게 전시회팜플렛02                   
 

1.

 조그만 구멍가게가 편의점과 대형슈퍼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도심외곽 시골 마을에서는

아직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어릴 적 향수마저 떠올려준다. 우물가나 느티나무아래 정자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구멍가게는 마을사람들의 소통의 장소이기에 진열된 잡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번개는 담배연기를 무서워 해!” “방앗간에서 통통귀신을 봤어!” 등등의 아줌마들의

수다를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물론 눈과 마음은 달디단 눈깔사탕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곳에서의

귀동냥은 불쑥 내 삶에 끼어들곤 한다.

 지금의 구멍가게들은 겉모양이 낡고 허름하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느라 약간 주저앉은 기왓장과

덧붙여진 슬레이트 지붕의 비대칭감각은 반듯한 시선으로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갈라진 시멘트벽과

연갈색 미닫이출입문은 전형적인 구멍가게의 풍경이다. 돈들여 설치한 줄무늬 차양만이 조금 시선을 끈다.

출입문 유리에 붙여진 진열상품 광고물들은 빛바랜 물감들처럼 풀어져있다. 그냥 우두커니 놓여있는

플라스틱 의자들은 언제나 텅 비었다. 마치 소외된 사람들의 형체 없는 만남인 듯,

분명 속삭임은 있는데 고요하고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희미한 옛추억을 기둥삼아 좁은 가게문을 ‘드르륵’ 열면 그 곳은 낯선 이에게 조차 친밀함

그 이상의 달콤함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것이 구멍가게의 매력이다.


2.

 내가 ‘구멍가게’ 펜화를 연작하게 된 것은 97년 퇴촌(退村)으로 이사하고 난 뒤다. 나라가 IMF 진통을

겪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기이다. 관음리에서 도수리까지 걸어 다니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발견한

양철지붕 구멍가게를 촘촘한 펜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작업실에서 손가락이 휘어지도록

속도를 내어 그리기 시작하였고 그림 한 점이 완성될 때 마다 그 그림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

 아침 햇살 가득한 날에 보았던 그 느낌으로 더 이상 구멍가게가 어디에 있는지, 기념비적인 장소인지,

무엇을 팔고 있는지, 언제 헐리게 될지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 구멍가게는 내 그림에서

이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둠이 내릴 때에도 스산한 공기와 꾸적 꾸적한 습기를 머금지 않고

따사로움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햇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춰지기에 내 그림들 또한 여유로움으로 비춰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 2007. 09.  이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