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고 섬세하게 오픈닝 분위기를 담아주셨네요.고마워요^^http://blog.naver.com/damho67/150023237110

     

날카롭게 뭉개기

     

- 이미경 햇살이 눈부신 날, 꽃신을 사러 간다.   뭉텅하게 잘린 오후가 길을 재촉하지만 돌아 올 길을 생각하면 떠나기가 싫다. 햇살이 눈부실 수 록 우리에게는 꿈이라는 그늘이 필요하다. 그곳에라야 안식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쉼이 있다.  숨 쉬는 공간, 내게 필요로 하는 작은 집, 낡은 점방.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신나게 달음박질 하던 골목길 공터 앞. 나무 한그루만 그늘을 만들며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빈 아파트를 지키는 할머니에게 꽃신을 사가지고 가는 꿈을 꾸는 날이다.  너무 날카롭게 다듬어진 세월을 뭉갠다.  그녀의 낮고 가벼운 집에는 비가 새도록 내버려 둔다. 요즘 같은 우기에도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길에 붙은 담벼락은 지워버렸고, 그렇게 세상의 담은 허물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과 관객 1, 관객 2, 관객 3은 처음부터 없다. 문틈으로 몰래 훔쳐보는 시선 하나 정도는 또 다른 그녀이기에 애써 무시한다. 온통 이름뿐인 세상에서 이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여자, 그래서 <유림상회> 간판도 조금씩 지우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세상, 작은 소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종이 위, 그 세상 밖에다 집을 짓고 점방을 연다. 하루 한 두 번은 숨겨두었던 '관객 1'이 찾아와 라면 하나, 알사탕 한 봉을 사가고 '관객 2'는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간다. 그들은 그녀가 지워버린 그 곳에서  잠시 숨을 쉬고 간다. 그들이 남긴 삶의 모습을 지우고 못 본 척 침묵한다. 아니 침묵처럼 숨겨두고 혼자서 훔처보며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닫힌 창으로 햇살을 밀어 넣고 있다. 닫힌 가게 앞에 멈추어 선 그녀는 잠시 문고리를 잡았다 놓는다. 빈집은 잠을 뒤척이는 것으로 반응한다. 하여 악몽은 어디에도 없다. 오래된 라디오 소리가 정겹고 주인집 강아지가 밥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유일하게 날카로움으로 남아 있다. 낡은 점방들을 찾아다니는 그녀의 낡은 자동차가 열려진 문만큼 잘려나가 구겨진다. 그녀에게는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 점방, 닫힌 유리창 안으로 뽀얗게 먼지를 쌓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만이 유일한 관심사다.  그녀는 그녀 안에서 빠져나와 그녀를 응시한다. 시간에 밀려 온 길을 되돌아간다. 누구에게 가는 것인지, 음료수 한 병을 사려는 그녀. 낡은 지붕아래에서 무릎이 맞닿아 콩닥콩닥 가슴은 뛰고, 손바닥이 땀으로 미끈거리던 기억을 찾으러 다니는 것일까?   낡은 집에는 언제나 울음 섞인 삶으로 시끄럽다. 나는 그렇다. 하지만 그녀의 집에는 시끄러움은 늘 안에서 잠겨 진다. 왜 그녀의 울음소리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을까? 울음이 없다는 것이 웃음만 남았다는 것은 아니다. 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길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그녀의 집에는 마당이 없기 때문이다. 길이 마당이고 세상이 담이다. 마당이 없으면 마당에 뒹구는 이야기도 없다. 이야기가 없으면 울음은 가식이다.   모델하우스가 더 환한 불을 켜듯 세상은 빈집이 더 요란하다. 밖을 보면 너무 눈부셔 지독한, 그 세상에 우리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햇살을 밀어 넣는 이유이다. 그래서 그녀의 집은 울음이 없다. 그저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그늘이다. 잃어버린 꿈이다. 그걸 알기에 슬프다. 그걸 보고 있기에 더 슬프다. 눈물이 난다.  채우지 않은 햇살은 그래서 눈부시다.  그녀의 펜은 너무 날카로워 세상을 뭉개기가 좋다. 그리고 몇 가지 작은 종류의 색깔들만이 빈 튜브에 남아 있을 것 같아 더 좋다. 또는, 몇 날 밤 허벅지를 찌르며 견딘 젊은 피가 하얀 종이 위에 베여 있어 애처롭다. 어쩌면 어둠이 너무 깊어 채우지 못한 햇살이다. 그래서 한낮이고, 그래서 그녀가 서성이는 곳은 늘 문 밖이다. 유목민처럼 그림자가 주인인 창 안의 풍경은 기억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결코 어둠을 지우지는 않는다. 언제나 존재한다. 담처럼, 아이처럼, 마당처럼, 그림자처럼 지울 수는 없지만 햇살 안에 당당히 묻어 두기에 안온하다. 탁, 하고 전등불을 켜면 언제든 우루루 물러 갈 어둠이라 좋다.  그녀가 빛이 부르는 소리에 죽음처럼 고요했던 지하실을 올라와 실눈을 뜬다. 그렇게 어둠에서 막 벗어난 시간. 우리가 한참 동안 어지러움에 눈을 뜨지 못하는 그 순간에 그녀는 혼자서 큰 눈을 뜨고 있다. 놀란 토끼 눈으로 세상를 응시한다. 지워졌다 생각했던 본향의 풍경을, 기억을, 그리움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햇살에 익숙해져 눈을 들어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 때에는 이미 지워져 버리고 없는 그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그림자가 없다는 걸 안다.  길이 없으니 그림자도 없는 우리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길에서 빛을 찾는 여자를 만났다. 길이 없어 그림자가 없는 길에서 지워진 길을 따라 길을 만드는 일꾼이다. 너무 날카로워 뭉개지기 쉬운 펜을 들고 작은 곳에, 그러나 환한 곳에 눈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다. 그녀는 마음 안에 남은 작은 틈을 비집고 그곳을 넓혀 비워두고 남겨둠으로 온통 눈부신 햇살로 채우는 것이다.그녀에게서 그림이란,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날카롭게 뭉개진 다른 언어일 뿐이다. ˚  

글쓴이 구름물고기는 시인이며 ‘구름물고기의 미술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시적 상상력으로 읽는 그림’이라는 글쓰기로 미술평론과 칼럼,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임.